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스 퍼거슨 (문단 편집) === 진화하는 감독 === 알렉스 퍼거슨이 갱신해왔던 신화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으며, 그는 유럽 축구에서 나타난 전술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취합하여 완성된 형태로 선보이는 감독이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마지막 시즌의 전술 변화, 이전까지 주 포메이션으로 사용하던 442에서 4-2-3-1 내지는 4-5-1로 포메이션을 변경하고 테크닉있는 공미를 위주로 한 점유율을 중시하는 전술을 도입하면서 세계적인 트렌드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다시 딱히 강해보이지 않는 스쿼드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뒀다. 아마 계속 현역이었다면 전방압박과 라 볼피아나와 센터백들을 통한 후방 빌드업도 흡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스리백도 성공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위의 서술들을 읽다보면 슬슬 눈치챘겠지만 딱히 본인만의 전술적인 철학이 있는 감독은 아니었다. 많은 축구팬들이 '퍼거슨하면 생각나는 전술, 경기 스타일이 있느냐?'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심 장악, 동기 부여에 뛰어난 감독이었고 전술가로서는 본인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늘 새로운 전술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본인의 전술에 더하는, 마치 [[마인 부우]]같은 감독이었다. 퍼거슨의 팀이 늘 우승 경쟁을 해왔던 것은 이런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전술과는 다르게 대인 관계나 매니징 스타일을 보면 굉장히 고집이 강했다는걸 알 수 있다. 주전 경쟁에 밀려서 퍼거슨에게 총을 들고 협박했다는 카더라까지 나왔던 폴 인스가 방출되었던 경우만 봐도 선수가 얼마나 대들던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감독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고집을 밀고 나갈 때와 아닌 때를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 [[셀틱 FC|셀틱]]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으로 수십 년간 이어진 셀틱과 [[레인저스 FC|레인저스]] 양강 체제를 무너뜨렸다. > ● [[UEFA]] 클럽 랭킹 106위였던 [[애버딘 FC|에버딘]]을 6위로 올렸다. > ● 13살에 [[데이비드 베컴]]을 스카우팅. 이후 베컴은 [[맨유]]를 넘어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 [[파일:베컴207.jpg]] > ▲ [[2012 런던 올림픽]] 홍보대사, 베컴 > ● [[헤이젤 참사]]로 [[UEFA]] 리그 랭킹 3위였던 영국 리그가 한 순간에 29위까지 밀려나며 추락.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전체 클럽들이 5년간 유럽 무대를 금지당했고 우수한 용병도 떠났다. [[캄프 누의 기적]]을 일으키며 [[트레블]]을 달성, 박살나버린 영국 리그를 캐리했다. 팀의 핵심으로는 7명이나 되는 유스 출신이 뛰고 있었다. > ● [[캄프 누의 기적]]으로 가장 극적인 [[트레블]]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직전 3분 안에 그것도 교체선수들이 들어와서 2골이나 넣으며 역전하는 드라마틱한 경기 스토리를 만들었다. > ● 슈퍼스타 [[베컴]]의 탄생으로 클럽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거부들이 영국 리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글레이저가[* 자수성가해 부호가 된 글레이저는 1995년 미국프로풋볼(NFL) 팀인 [[탬파베이 버커니어스]](Tampa Bay Buccaneers)를 인수해 스포츠 사업을 시작했다. 글레이저는 인수전에 뛰어들기 전만 해도 버커니어스는 만년 꼴찌 팀이어서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인수전 막판에 경쟁자가 갑자기 등장하는 바람에 2억 달러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이 거래는 풋볼팀 인수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글레이저는 인수 후 꾸준히 좋은 선수와 코치를 영입해 팀의 성적을 호전시켰다. 마침내 2003년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이후 버커니어스의 가치는 8억 달러로 치솟았다. 1억 9,200만 달러에 인수한 팀이 10년도 되기 전에 7배 가까이 몸값이 뛴 것이다. 그는 꼴찌였던 팀을 2003년 슈퍼볼 우승팀으로 키우는 능력을 보여줬다. 글레이저는 검소했지만 돈을 쓸 때는 화끈하게 쓰는 사람이었다. 전용기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출장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했고 대부분 저가항공사만 찾았다. 그는 아들 브라이언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입고 있는 바지가 보이죠? 저게 200달러(20만원)짜리 휴고 보스 바지야. 난 겨우 20달러(2만원)짜리 바지를 입는데 말이야"라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가 [[맨유]]를 2005년에 인수했다.[* [[맨유]] 인수에 관심있던 거부들 리스트 [br]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318839|루퍼드 머독]] (전 LA다저스 구단주) [br] ●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 [br] ●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맨시티 구단주) [br] ●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12191456143&sec_id=520401&pt=nv|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국왕 (PSG 구단주)]] [br] ●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AS 모나코 구단주) [br] [[맨유]]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거부들이 적지 않았다. 2000년대 초 LA다저스 등 다른 프로 스포츠팀을 사들이려고 했던 글레이저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눈을 돌렸다. 글레이저가 맨유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맨유팬들이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맨유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루퍼트 머독]]은 맨유의 지분을 매입해 인수하려다 소액주주와 서포터 연합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 50여 년간 숱한 비난과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난관을 뚫고 나와 한번 목표를 삼으면 결코 그냥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의 글레이저가 여론이 악화됐다고 포기할 리가 없었다. 맨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팀인 데다 입장권은 거의 대부분 매진이었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지닌 구단이었다. 그래서 2003년부터 조금씩 맨유의 주식을 사 들이기 시작해 28.1%의 지분을 확보한 뒤 2, 3대 주주에게 공식적으로 매수를 신청, 이를 성사시켰다. 결국, 2005년 글레이저는 맨유의 주식 75%를 인수해 구단주가 되었다. 인수금액은 7억 9,000만 파운드(약 1조 3,900억 원). 하지만 이 중 2억 7,500만 파운드(약 4,850억 원)만이 글레이저 가문의 돈이었고 나머지 인수금액 중 2억 7,500만 파운드는 IB(투자은행)에서 나머지 2억 4,000만 파운드는 이자율이 높은 헤지펀드를 통한 현물출자대출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JP모건 투자은행과 리파이낸싱 과정을 거치며 5억 파운드의 우선순위부채를 가져왔다.] 그러나 대부분 인수자금은 구단자산을 담보로 빌린 것으로 부채가 없었던 맨유의 재정이 단기적으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재정적인 상황 속에도 '로테이션' 신공과 감독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지금 맨유의 재정은 안정된 상태로 최근 [[폴 포그바]]로 월드레코드, 리그레코드, 클럽레코드를 동시에 갱신해 화제를 모았다. 퍼거슨이 26년간 만들어낸 브랜드 이미지는 오늘날 메가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있게 했다. 맨유는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쉐보레와 유럽축구 스폰서십 역사상 최대 금액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는데 2014-15 시즌부터 7년간 무려 5억 5,900만 달러(한화 약 9,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